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 캐나다의 호수 위를 탐험했다. 느릿느릿한 카누 위에서 클리어워터와 아주르 호수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뛰어들며 자연의 순수함을 만끽했다. 곰과 무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500년 된 삼나무 숲에서 밤하늘의 별을 이불삼아 잠을 청했던 지난 여름날의 기억.

나는 지금 바다처럼 넓은 캐나다의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는 중이다. 손에는 노가 들려있지만 이따금 젓는 척, 흉내만 낼뿐이다. 그래도 카누는 반짝이는 물살을 헤치며 유유히 잘도 떠간다. 배에 함께 탄 동지가 뒤에서 조용히 방향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동지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 어린 소녀다. 패들을 젓지 않으면 길을 잃거나 떠내려가 버리는 급류도 아니고, 또 소녀의 패들링도 어른 못지않은 수준급이라 나의 게으른 노질에도 우리의 뱃놀이는 완벽하다.

수면 위에서의 풍경 감상은 유난스레 감동이다. 카누 위에선 시야와 수면이 아주 가까워지기 때문에 뭍에서 보던 것과 딴판인 세상을 볼 수 있다. 특히 하늘과 구름과 숲이 죄다 물 안에 담겨 세상이 원래 것보다 두 배는 더 커져 보인다. 그 안에 떠도는 나는 자연스레 손톱만 한 검은 점처럼 작아진다. 이 호수는 제 이름 클리어워터Clearwater답게 밑바닥 자갈들의 좁은 틈새까지 훤히 속을 드러낸다. 고개를 숙여 말간 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몸을 너무 심하게 기울였는지 카누가 한쪽으로 휘청거린다. 양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재빨리 중심을 잡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휴-우. 큰일 날 뻔했다. 지금 이 거대한 호수에는 어린 소녀와 나, 단둘뿐인데 여기서 콱 빠져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모를 거란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든다.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서 슬쩍슬쩍 노에 힘을 주어 **만 번잡해진 마음은 가라앉질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적이 언제였더라.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터라 손가락이 자꾸 혼자 꼼지락댄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없고, 지나치는 사람도 없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 이 상태가 너무 어색하기만 하다. 혹시라도 물에 젖을까 텐트에 남겨두고 온 카메라 생각이 절절해진다. 아니, 그동안 버릇처럼 중얼거려왔던, “나도 이젠 카메라 없이 여행가고 싶어!”의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멋진 풍경 안에 놓여있으면서도 이미 손에 움켜쥔 ‘완전한 고요와 평화’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나의 하찮은 정신 상태를 탓하고 있는데, 뒤에 앉아있던 어린 동지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아마 내 뒤통수에서도 심상의 불안함이 느껴졌나 보다. “난 이 소리가 참 좋아요. 노를 물속에 집어넣고 휘이- 저었다가 빼낼 때, 꼬르륵하고 나는 물거품이 내는 소리요. 어때요? 언니도 이 소리가 잘 들려요?”

카누여행의 메카 클리어워터와 아주르 호수. 물이 얼마나 맑고도 잔잔한지 수면에 하늘과 구름과 카누와 그리고 내가 모두 담긴다. 그 고운 풍경이 망가질까 노젓는 일도 망설여진다.

카누에 캠핑용품을 한가득 실고 반려견까지 온가족이 출동하는 카누여행은 캐나다에서 아주 보편적이다. 집에 두고 온 강아지 생각이 절절해지는 순간.

웰스 그레이 주립공원에는 폭포가 총 39개나 된다. 도슨Dawson폭포, 헬켄Helmcken폭포 등 나이아가라 못지 않은 웅장한 폭포도 여럿이다.

캐나다에서 즐기는 카누여행
열두 살짜리 꼬마도 자신만의 노 젓는 맛을 아는 캐나다. 우리에겐 아직 낯선 문화이지만, 카누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마당에서 자전거 타는 것 마냥 익숙한 일이다. 카누는 캐나다와 미국 땅에 살았던 인디언들이 연락이나 사냥을 위해 자작나무로 만들어 탔던 배의 한 종류로 캐나다인들에겐 정신적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흔히 카약과 카누를 혼동하기도 하는데, 카약은 급류를 타며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반면 카누는 수면 위를 느릿하게 가로지르는 서정적인 매력을 지녔다. 카약은 2개의 노, 카누는 단 1개의 노만 사용한다. 특히 카누는 거친 물살을 타는 게 아니라서 전복될 우려도 적고, 상부가 노출되어 있는데다가 배가 커서 물건을 잔뜩 실을 수 있으니 단순한 스포츠보다는 긴 여행에 알맞다.

안전 수칙과 패들링을 잘 숙지하고, 서서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면 별다른 운동감각 없이도 편하게 즐길 수 있기도 하다. 노를 젓는 기본 방법은 이렇다. 패들을 물에 꽂듯이 넣고 천천히 물을 밀어낸다. 이때 패들의 날 부분이 수평이 되도록 끌어올리는 게 포인트. 비록 쉬운 설명에 비해 익숙해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길지만, 자연스레 몸으로 익히면서 천천히 카누와 친해지는 것이 또 진득한 매력이다. 내가 겨우 이틀 동안 노를 저었음에도 마치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한참을 근육통에 시달린 것을 보아하니 카누도 전신근육을 이용하는 스포츠임에 틀림없다. 운동효과에도 만점일 테다.

하지만 의외로 힘보다는 섬세함을 요구하는 게 또 카누다. 아웃도어라면 절대 뒤지기 싫어하는 호주의 청년과 함께 카누를 타보니 알겠더라. 그의 튼튼한 근육과 힘으로 밀어대는 카누의 움직임이 술 취한 아저씨의 비틀대는 걸음걸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비 내리듯 흘러내리는 땀과 노 젓는 자태만을 보면 TV에서 봤던 조정 경기처럼 쑥쑥 앞으로 나아갔어야 했는데. 사람들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우리 카누를 보고 킥킥댔다. 그때 열두 살 소녀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에이. 카누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왜 그렇게 힘을 많이 써요? 앞으로 가고, 왼쪽으로 틀고, 오른쪽으로 틀고, 뒤로 가고, 또 제자리에 머물게 만드는 노를 젓는 기술은 있죠. 하지만 그보다 마음이 중요해요. 카누는 달리기가 아니에요. 카누에 타서 무엇을 하고 싶은 지가 중요한 거죠. 노를 젓는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만, 속도가 느리니까 보고 싶은 것도 마음껏 볼 수 있잖아요. 낚시를 할 수도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명상을 할 수도 있고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걸 하세요. 노만 젓지 말고!” 내심 일행 중에 1등으로 치고 나아가고 싶어 했던 호주 청년과 나는 괜히 멋쩍어졌다. 그래, 꼬마의 말처럼 느리게 타는 카누가 진정한 카누다. 멋진 풍경을 보고 싶은 만큼 보다가 뭍에 들려 쉬고, 또다시 노를 젓다가 노 젓는 일이 싫증나면 원하는 곳에서 또 쉬고, 아니 그것도 모자라면 하룻밤이고 이틀 밤이고 묵어가는 게 진짜 캐나다식 카누여행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웰스 그레이 주립공원
캐나다 캠핑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 선택한 곳은 캐나다의 서부다. 태평양 연안부터 로키산맥에 걸친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 주에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광활한 원시 자연이 많아서다. 밴쿠버Vancouver에서 비행기를 타고 캠룹Kamloop으로 간 후, 차로 134킬로미터를 달려 도착한 곳은 웰스 그레이 주립공원Wells Gray Provincial Park. 면적이 1백4천만 에이커가 넘는 이 공원은 BC주 남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놀라운 황무지로 카리부Cariboo산맥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산꼭대기에는 빙하지대가 있고, 고산지대를 제외한 곳에는 침엽수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알파인 꽃들이 가득한 초원과 온대림, 사화산을 비롯한 다양한 자연환경을 200킬로미터가 넘는 트레일을 따라 걸으며 즐길 수 있다. 조류 219종, 포유류 50종 등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유럽인들이 북미에 자리 잡기 이전에 원주민들의 아주 귀중한 사냥지이기도 했다.

공원 남부는 작은 화산으로 생긴 용암으로 뒤덮여 있다가 마지막 빙하기 때 지대가 급격히 얼면서 균열이 일어나 생긴 절벽과 폭포가 여럿으로 총 39개의 폭포가 있는 웰스 그레이 주립공원은 캐나다의 폭포공원라고 불린다. 또한, 엄청나게 맑고 깨끗한 클리어워터Clear Water 호수와 아주르 Azure 호수를 품에 끼고 있다. 태생이 화산활동과 빙하침식으로 생겨난지라 깨끗할 뿐 아니라 규모가 아주 장대하다. 사실 클리어워터와 아주르 호수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진 않다. 이미 유명한 곳은 다 가본, 정말 멋진 곳이지만 아직 사람들의 손을 덜 탄 곳을 찾는 모험가들이 주로 찾아온다. 완벽한 자연과 진정한 야생을 꿈꾸는 이들이 말이다. 그곳에 머무는 내내 호수에서 만난 이들의 국적을 보아하니 캐나다 말고는 모두 독일이더라. 아무래도 독일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모험가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듯.

순도 100퍼센트의 캠핑라이프
내 스마트폰은 “네트워크를 찾는 중입니다.”를 외치다가 전사했다. 사실 클리어워터 호수에 진입하기 전부터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약속에 늦은 가이드가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는 생경한 장면을 보고서는 이 지역 전체가 전화도 터지지 않는 리얼 야생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2박 3일의 카누캠핑을 함께 한 일행은 호주에서 온 청년 벤, 캐나다 아줌마 캐런, 그리고 캐나다인 가이드 이안이다. 그리고 이렇게 4명이서 하려던 캠핑에 식구가 늘었다. 이안이 부인 테이와 큰 아들 보, 그리고 딸 애런과 아메이까지 데려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니, 이게 캐나다 스타일인가? 직장에 애를 데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오해였다. 아이들은 카누 캠핑에서 카누선생이자 요리사, 짐꾼, 낚시꾼, 청소부 등의 다양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미 캠핑을 여러번 겪은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혼자서 모든 지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듯했다. 특히 열두 살짜리 소녀 아메이는 내 옆에 딱 붙어 다니며 진정한 카누 캠핑이 무엇인지 설파하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클리어워터와 아주르 호수의 카누 캠핑의 패턴은 단순하다. 카누를 타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 들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또다시 카누를 타다가 물 위에서 낚시하고, 다시 마음에 드는 곳에 카누를 세우고 축구를 하거나 낮잠을 자고, 또다시 카누에 올라타는 것. 해가 지기 2시간 전 쯤에는 캠프 사이트를 찾아 짐을 풀고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그렇게 밤을 보낸 다음엔 다시 아침에 일어나 짐을 싸고 카누에 몸을 싣는다. 거의 호수를 떠도는 유목민 놀이에 가깝다. 캠핑장도 대단하지 않다. 그저 자연 속에 옥외화장실과 피크닉 테이블, 불을 피울 수 있는 드럼통, 음식을 보관하는 철통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거추장스러울 것 없는 진짜 캠핑을 위한 캠핑. 어느새 ‘장비자랑 성토대회’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요즘 캠핑에 비하면 거의 아무것도 없이하는 처절한 캠핑이다. 나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본, 지극히 순수한 자연 속에서의 자유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머리에 작은 손전등을 하나씩 동여매고 마른 나뭇가지에 마시멜로우를 끼워 굽고, 별빛 아래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샴푸로 머리하나 못 감아 얼굴이 꼬질꼬질해도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는,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인 순도 100퍼센트의 캠핑이다.

캐나다 카누캠핑의 매력
카누밖에 없는, 오로지 카누만 타고 하는 캠핑은 의외로 풍경감상 이외에도 할 일들이 넘쳐난다. 핸드폰과 컴퓨터를 손에 쥐지 않은 맨몸의 캐나다 십대들과 함께 지내는 일은 즐겁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메이는 내 텐트를 두드렸다. “우리 물고기 잡으러 가요! 오늘 점심은 Rainbow Trout 어때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호수 안에 낚싯대를 던져 넣고 말간 물을 들여다보는 일이 클리어워터의 물과 나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큰 아들 보는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고, 캐런 아줌마는 “나는 비치에 누워서 좀 잘게요.”하고 책 한 권만 들고 모래사장에 누워 한참을 일어나지 않았다. 호주청년 벤은 삼나무에 기대어 일기를 썼고, 또 둘째 딸 애런은 혼자 노는 걸 좋아해서 숲에 들어가 지천에 널려있는 블루베리를 따와 우리에게 먹였다.

아메이와 나도 카누를 타다 지치면 가만히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며 명상을 즐겼다. 그럴 때면 우리 머리 위로 대머리 독수리와 물수리들이 날아다녔다. 아메이는 어린이답지 않게 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었다. “웰스 그레이 공원에는 아주 작은 두꺼비부터 독수리, 물수리, 순록, 무스, 곰들이 많아요. 밤에도 음식은 캠핑장에 있는 튼튼한 창고에다가 따로 넣어두어야 해요. 안 그러면 곰들이 들이닥칠 지도 모르거든요. 그런데, 그리즐리 베어는 이 공원에 100마리 넘게 산다는 데 캠핑을 하다가 쉽게 마주치기는 어려워요. 그리고 밤에 들리는 아-오, 하는 늑대소리에 놀라지 말아요! 오리처럼 생긴 룬Loon이 짝을 찾는 소리거든요.”

저녁을 먹은 뒤 해질 무렵 아메이와 다시 카누에 올라탔을 때였다. 붉게 물든 호수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펼쳐졌다. 뱃머리에 앉아 바라보는 티끌만한 장애물조차 없는 탁 트인 풍경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라 감동에 겨웠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물속 깊이 노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뱃전에는 파르르 파문이 일었다. 아메이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노에서 또르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청량했다. 꼬마에게 왜 이런 노 젓는 소리를 좋아하는지 다시 물었다. “집에선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소리도 들리고, 오빠가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도 들려요. 밴쿠버처럼 시끄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늘 수많은 소리가 섞여서 한꺼번에 들려요. 그런데 여기 호수에선 아니에요. 내가 노를 움직이면, 물이 혼자서 대답하잖아요. 꼬르륵하고. 크크크.” 열두 살짜리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철학적인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나도 자연을 대할 때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고. 카누는 온전히 내 힘으로 하는 나와 자연의 대화다. 노를 부여잡은 손아귀에도 일렁임이 전해진다. 천천히 내 리듬에 맞추어 노를 저으면 풍경은 등 뒤로 밀려나지만 몇 번을 곱씹어도 여전히 한참을 내 곁에 머문다. 캐나다 서부의 깊고 깊은 산속까지 찾아 들어갔던 웰스 그레이 주립공원. 클리어워터의 맑은 물은 카누여행을 위한 완벽한 목적지였다. 얼마나 천천히 꾹꾹 눌러 담았는지 지난여름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