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서 한마디도 대응하지 않은 남편이 이튿날 아내에게 쓴 편지랍니다.

울화만 앞세운 앞뒤 논리도 맞지 않는 당신 억지 주장과 억장에 난 대응보다 함구를 택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고성, 욕설, 막말, 폭력하지 말자고 약속한 것이 이미 수 십 차례지만 당신은 그런 약속을 저버리고 당신 울화대로 행동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나도 그런 막무가내 소릴 들으며 억울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일일이 이성적으로 대응을 해왔지만, 그런 대응이 오히려 역효과란 것도 알았고 난 다시 당신이 고성, 막말, 욕설, 폭력 등으로 날 대한다면 철저히 어제와 같이 유령취급하고 무 대응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과해라. 당신이 어제 했었던 일을 스스로 되뇌어가며 무엇이 잘못인지 스스로 깨닫고 진심어린 사과를 해라. 물론 당신이 당신 스스로 한 일에 대해 잘못을 알더라도 쉽게 사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난 잘 안다. 사과를 하든지 말든지 당신 선택이지만 사과를 한다고 해서 상대방인 내가 그 사과를 듣고 기세등등하거나 오만을 떠는 사람이 아니며 그렇다고 당신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도 아니다.

난 약속한대로 당신 상품(옷박스)을 당신 가게로 옮겨다 주었을 뿐으로 어떤 대가도 바란 것은 없다. 엊그제 나에게 닭백숙을 해주겠다고 하거나 국밥이나 중국집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당신 문자 들어오는 것 보고 알면서도 기겁을 했다. 그걸 사주고 나에게 왜 외식으로 과소비를 하도록 방치를 했느니 말리지 않았느니 그 소리 듣기 싫어서 그냥 라면 먹겠다고 한 것이고 그렇게 홀로 장시간 살아봐서 그런 음식이 특별히 탐날 이유도 없었다. 대가를 바라고 그런걸 해주고 사주겠다고 했나?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당신 어제 내가 먹고 싶은걸 고르라고 해서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주문했다. 같이 먹으면서도 더러는 삼겹살도 먹어줘야지 하며 맞장구를 쳐주더니 나중에는 삼겹살을 먹었다고 뭐라 하고 자신이 사준 술 한 병 이외에 내가 더 시켜도 되느냐고 물어본 것을 두고 마치 술을 더 시켜먹거나 이미 시킨 사람 취급을 하며 광분하기 시작했다.

난 당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술도 먹지 않는 남자다. 외식도 안하고 퇴근 후 집 이외에 다른 곳을 가본 적도 없다. 뭘 사달라고 한 적도 없고 외식시켜 달라고 한 적도 없으며 내 용돈 통장과 직불카드엔 3만원 이상 가지고 있어본 적도 없다.

난 당신이 사주겠다고 나선 것 이외에, 먹자고 제안한 것 이외에 사실 뭘 먹고 싶다고 외식을 제안해본 적도 없다. 당신이 외식 얘기조차 하지 말라고 해서 그 약속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해주는 허락한 것만 가능한 것만 외식이라면 난 그저 굴욕적으로 감사하게 받고 말아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난 그냥 참기로 했었다. 자신이 열어준 외식 기회를 엄청나게 비싼 것을 요구한 것도 아님에도 즐겁게 먹고 일어나면 되는데, 왜 사주겠다는 것을 그냥 받아먹고 거절하지 않느냐고 얼토당토않게 생색을 내니 그게 말이 되나?

앞으로 날 위해 ‘뭘 사주겠다.’, ‘외식을 하자.’ 등등 어떤 제안 등도 하지 마라.

무거운 옷 박스를 들고 발이 아파 쉽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서 무리한 내가 길을 지나다가 파스를 사야겠다고 했을 때는 이미 못 견딜 수준이 온 것인데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당신은 앞뒤 맞지도 않는 원망을 뿜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거기엔 내가 아무 맞설 이유가 없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지나온 곳이 9,000원 덤핑 옷가게 - 내가 옷을 사달라고 했었나? 난 관심 없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지출까지 내 탓을 하며 이미 사줘놓고 생색을 내고, 내가 그 옷을 받아 들고 어떻게 했길래 그런 무지막지한 이치도 맞지 않는 원망을 들어야 하나? 옷? 다 버리든지 반품해버려라. 난 그런 생색에 찌든 알량한 자켓 추호도 입을 생각 없다.

당신 스스로도 그런 약속 하나를 지키지 않으면서 왜 나에게 약속을 강요하나? 돈? 좋다. 나도 그거 얼마 벌지 못해도 내 속으로 한 번도 따로 속여본 적이 없다.

내 집이니까 당장 나가라고? 고전을 쓰나? 거기는 당신 집도 아니고 내 집도 아닌 우리 집이다. 그렇게 전제하고 약속하고 온 곳이 OO동 지금 집이다. 만약 그곳을 당신 이름으로 계약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개인만의 집이라고 우기고 어제와 같은 언행을 할 수 있다고 나에게 처음부터 전제를 했다면 난 OO동 이사오지 않았다. OO동은 당신 집도 내 집도 아닌 우리 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것 중 하나가 정식 부부가 이혼을 해도 집 명의나 자동차 명의가 어느 한 쪽에 있다고 자기 것이니 손도 대지 말라고 하는 배우자다. 부부싸움 했다고 자기가 산 물건 내가 산 물건 갈라놓고 집에 테이프로 선을 긋는 유치한 짓하고 똑같다는 것이다. 우리 나이 40대다. 유치한 짓 하지 말자.

내가 서로 과거 사귀던 사람들이나 아무런 상관이나 이유 없는 사람들 끌어들이고 거론하지 말라고 했다. 서로 묻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신은 늘 소용이 없었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기까지 깨면서 수도 없이 전에 사귀던 남자와 나를 대놓고 비교하며 나에게 상처 주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재혼 부부가 하지 말아야 할 금기를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울화대로 깨는 당신 모습에 진짜 답답함을 넘어 이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난 결코 배우자의 과거에 집착하거나 배우자의 과거를 들춰내는 인간이 아니다. 의처증 환자도 더더욱 아니다. 서로 허물을 가진 사람들끼리 덮어주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과거와 주변 식구들까지 끌어들여 울분을 토해내는 당신에게 이미 이성은 달아나고 없었다.

뭐든 자신의 주장이 맞고 상대방 탓이라고 하는 우격다짐 식의 자세도 더 돌아봐라. 당신은 바라는 것이 그토록 많은데 상대방은 당신에게 뭘 바랐었는지도 생각해봐라. 당신 생각은 전적으로 다 옳고 나는 다 틀렸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매번 이런 다툼을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날 위해 무엇을 했다고 생색내지도 말아라. 난 지금까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준 것도 없다고 겸손하게 말할 수 있지만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당신처럼 당당하게 상대방의 자존심을 죽여 가며 생색을 내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막말, 고성, 욕설, 폭력. 전 배우자들이나 이성에 대한 과거 허물 이야기. - 만약 그래도 수없이 약속을 저버리며 당신 울화대로 이걸 마음대로 하겠다면, 앞뒤 논리도 맞지 않는 억지를 앞으로도 또 하겠다면 난 그 순간 철저히 당신을 유령취급으로 대응할 것이다. 기존에는 일일이 이성적으로 대응하였지만 이젠 무 대응 할 것이다. 호칭, 용어 등 기초적인 말조차 바로 하지 않는다면 불러도 일절 대답안할 것이다.

당신이 함부로 쓰는 은어와 막말(**파트너, 떡치기, **야, 딴 놈(년)이랑 바람 등) 속에 담긴 자신의 인격을 되돌아봐라. 아울러 당신이 제멋대로 말하는 일탈적인 언행(외도, 가정을 도외시 하는 행동 등)도 난 슬기롭게 대처할거다.

그런 굴욕을 당하면서도 어젯밤 말없이 내가 당신을 왜 안았겠나? 내 마음을 내려 놓을테니 진정하라는 의미와 아무리 험난해도 원칙은 지킬 것이고 무너지지 않겠다는 내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임신을 시키려고 **를 쉽고 간단하게 해버렸다는 굴욕적인 막말과 아이가 생기면 가차 없이 낙태를 하겠다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것을 보고 나는 ‘악마’를 느꼈다.

서로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서로의 허물을 가려주고 서로 희생하고 아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든 긁어서 부스럼 만들기 식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방에 대한 손익관계나 계산하고, 상대방에 대한 피해망상으로 가득 얼룩진 지금 당신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봐라.

지난 일들 잘 생각해보고, 할 수 있으면 사과해라. 물론 반드시는 아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그것이 당신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우리에게 해가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난 당신이 반드시 사과할거라고 절대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