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램(tram, 전차)의 도시’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 취리히에 붙은 여러 별명 중 하나다. 취리히 칸톤(canton, 주) 인구 1백30만 명을 실어 나르는 주된 교통수단이 트램이기 때문이다. 총 15개 노선이 있으며 전체 선로 길이는 82km에 이른다.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수십 년 된 낡은 트램부터 반짝거리는 최신식 트램까지, 지하철에 비하면 아담한 크기에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이 작고 아름다운 도시 취리히의 풍광과 잘 어우러진다.

단순히 트램이 많다고 해서 ‘트램의 도시’란 별명이 붙은 것은 아니다. 트램을 이용한 기발한 관광 이벤트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추운 한겨울엔 트램 안에 마련된 테이블 좌석에 앉아 퐁뒤를 먹을 수 있는 ‘퐁뒤 트램(fondue tram)’이, 스시가 인기인 여름철엔 ‘스시 트램(sushi tram)’이 운행된다. 물론 이 트램들은 기존 트램과는 별도의 시간표로 움직이며, 종류에 따라 티켓 가격도 제각각이다. 연중 시시때때로 열리는 ‘파티 트램(party tram)’ 이벤트에선 트램 전체가 파티장으로 변신한다. 싱글 남녀들이 티켓을 구입해 트램이 운행되는 동안 친구들을 사귀고 운이 좋으면 데이트 상대를 찾기도 한다.

온 도시가 낙엽으로 물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11월엔 ‘초콜릿 트램(chocolate tram)’을 만날 수 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초콜릿의 계절이 따로 있을 리야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초콜릿과 잘 어울리는 계절은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다. 얼어붙은 입술을 녹여주는 핫 초콜릿이 있고, 초콜릿과 함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밸런타인데이가 있어서다. 초콜릿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첫 번째 이벤트가 바로 초콜릿 트램이다.

올해 초콜릿 트램은 지난 11월 2일부터 10일까지 9일 동안, 매일 6차례 운행됐다. 트램이 출발하는 취리히 벨뷔(Bellvue) 거리엔 출발 시간마다 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수십 년 된 구식 트램을 개조해 만든 초콜릿 트램에 한 번에 탈 수 있는 인원은 약 20명. 기껏 기다리고도 표를 구하지 못해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도 많다.

5프랑(약 6천원)짜리 표 한 장을 사서 트램에 올라타면 바로 핫 초콜릿이 제공된다. 초콜릿 조각을 불에 녹여 바로 먹는 듯한 진한 맛에 풍성하고 부드러운 우유 거품은 덤이다.

추위에 얼어붙었던 손가락이 녹을 때쯤, 이곳 사람들이 겨울철에 즐겨 먹는 케이크인 ‘팽드젠(Pain de Genes)’이 나온다. 빵 위에 뿌려진 달콤한 슈거파우더가 이 도시를 곧 하얗게 덮을 눈을 연상시킨다. 이게 끝이 아니다. 파티셰 유니폼을 차려입은 웨이트리스가 커다란 쟁반 가득 초콜릿을 담아 트램 안을 돌아다닌다. 승객들은 아몬드 초콜릿, 커피 초콜릿 등 입맛에 맞는 다양한 초콜릿을 디저트로 골라 먹을 수 있다. 달콤한 맛의 향연에 도취되는 동안, 트램은 20분에 걸쳐 취리히 도심을 천천히 돌아다닌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키 작은 건물들과 낙엽수,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과 자전거 행렬은 마음까지 녹여준다.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취리히의 물가에 비하면 20분 동안의 트램 관광과 핫 초콜릿, 케이크와 초콜릿 디저트가 단 5프랑이란 건 거저나 마찬가지. 그 이유는 초콜릿 브랜드 호놀트(Honold)사가 광고를 목적으로 이 트램을 운행하기 때문이다. 호놀트는 스위스 제네바에 기반을 둔 1백 년 전통의 초콜릿 제조•판매 업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1월, 초콜릿 트램에서 출발하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여행’을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